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송상화 교수
2011년 3월 11일, 진도 9.0 규모의 지진이 일본 센다이市 동쪽 130km 해상에서 발생하였다. 지진에 의한 해일이 일본 동쪽 해안 전역에 발생하였고, 이후 해안가 및 원자력 발전소 침수 등으로 이어진 "동일본대지진"은 인류에 큰 상처를 남긴 재난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많은 훈련과 대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동일본 대지진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보였고,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대지진 당시 초기 대응에서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재난 대응과정에서의 물류 역량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1].
물류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동일본대지진에서 나타난 물류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물류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Holguin-Veras et al. (2012)는 동일본대지진 초기대응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분석하였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재난 대응과정에서의 성공 및 실패 사례가 물류 리스크 관리에 시사하는 바를 찾아보고자 한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대응 과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에 대한 사전 준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일본의 특성상 미리 각종 재난에 대한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준비된 계획과 매뉴얼은 갑작스런 대규모 재난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재난 대응을 위한 사전 준비 단계에서 일본의 지자체와 관련 기관들은 다양한 재난 발생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이에 대한 준비 및 훈련을 실시하였지만,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동시에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 발생가능성에 대해 미리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자 소규모, 지역적 재난을 중심으로 개발된 기존 대응 전략 및 시설들은 효과적 대응에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식수, 음식 등 재난 대응 초기 과정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미리 계획된 저장소에 적정 수량으로 비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량에 턱없이 부족하여 초기 대응에서 큰 문제로 작용하였다.
두번째 문제점은 재난 발생으로 네트워크 인프라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일반적 방식의 물류 인프라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난 발생에 대비하여 운송수단과 저장소, 물류 터미널 등을 지정하였지만, 항만이나 도로, 터미널과 같은 주요 네트워크 인프라가 재난발생과 동시에 파괴됨에 따라 헬리콥터나 비행기와 같은 제한된 운송수단에 전적으로 초기 대응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재난 대응을 위한 물류 인프라 체계가 일반적 상황에서의 물류 운영 환경일 것으로 가정하고 대응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인프라 단절 발생시 대체 운송수단의 투입 및 물류 거점의 이동에 큰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더욱 큰 문제점은 재난 발생 직후 네트워크 인프라에 발생한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는 역량 역시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긴급한 물류 수요가 발생하여 주요 물품들을 효과적으로 공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인프라 곳곳에 발생한 단절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어 변경 계획 수립이 불가능하였다. 현대적 개념에서의 물류는 단순히 지점간 운송이 아니라 전체 네트워크 통합적 관점에서 최적화됨을 고려할 때 전체 네트워크 인프라의 단절 문제를 조기에 분석하지 못할 경우 효과적 계획 수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네트워크 문제 파악에 시간이 소요되어 통합 계획 수립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각각의 지역별로 자체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물류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평소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일시적 혼란은 불가피하였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주요 의사결정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는 곧 전체 재난 대응 활동을 조율하는 통제 기능의 붕괴로 이어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직과 조직간 의사소통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대지진이 발생한 후 지역간 조직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여 초기 대응에서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재난 발생 초기 대응이 이후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감안할 때 효과적 초기 대응 구조가 정착되지 못한 것은 피해를 크게 확대하는 결정적 악재가 되었다.
재난 대응과정에서의 물류의 중요성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것 역시 문제를 키웠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경우 핵심 물품들은 재난이 발생한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물품을 원거리의 외부로부터 조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초기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외부로부터의 물품 공급이 초기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처음 6일간 재난이 발생한 지역 내 주민들은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공급받지 못하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재난이 발생하면 내부에 비축된 물품을 우선 공급하고, 필요시 외부로부터 물품을 공급받는다는 일반적 대응 전략은 네트워크 인프라가 파괴되고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물류의 중요성을 부가시킬 뿐이었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의 물류는 기존의 물류와 달리, 수요가 전에 없던 수준으로 한꺼번에 몰린다는 사실은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대지진이 발생한 후 전국적인 구호 노력으로 엄청난 수준의 물품이 재난 발생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제한적으로 운영되던 물류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렸고, 크게 필요하지 않은 낮은 우선순위의 물품들을 운송하느라 중요한 운송수단을 낭비함과 동시에 중요한 물품은 네트워크 과부하로 운송되지 못하는 문제가 초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중요 작업에 투입되어야 할 자원들이 중요하지 않은 작업에 낭비됨에 따라 전체 네트워크의 혼란이 크게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급하게 운송된 50%~70%의 물품들은 재난 발생 지역에 도착한 후 창고에 그저 보관되어 있기만 하였다. 담요나 의류 등의 물품은 당장의 구호에 불필요하지만 운송 측면에서는 큰 부피로 인하여 부담이 되었다.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전체 네트워크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역량의 부족은 과부하가 걸린 네트워크에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현실은, 일부의 민간 물류기업들이 현실을 즉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운송 및 물품 공급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앙집중식 통제가 가장 효과적인 대응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파괴되고 기능간 조직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앙집중식 통제보다는 지역별로 분산된 조직 및 기능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각각의 민간 물류기업들은 중앙의 통제 및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물류프로세스를 실행하였다.
3PL STUDY에 의하면 화주 및 물류기업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물류 리스크는 자연재해 및 네트워크 인프라 단절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2]. 이러한 물류 리스크의 특징은 재난 대응 물류와 같이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규모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류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알려진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수행하더라도, 미래에 발생할 모든 문제에 대해 명확한 매뉴얼과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상되는 문제를 분석하고 예측하여 이에 적합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 리스크 대응전략이지만, 모든 발생가능한 문제에 대해 100% 대응가능한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철저한 사전 준비와 병행하여 문제 발생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류네트워크 운영에 있어서의 목표를 효율성 측면 뿐만 아니라 유연성 측면에서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 구조를 중앙집중형 관리 방식과 분산된 자율적 의사결정 간 장점을 고루 갖춘 유연한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훈련으로도 대응불가능한 수준의 갑작스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각각의 지역 및 기능들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전체 관리 구조가 정착될 때까지 적극 대응하는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 중앙집중형 관리 구조를 통해 전체 네트워크 측면에서 낭비없는 최적화가 될 수 있지만, 재난이 발생할 경우 조직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역별 문제를 중앙에서 제때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지역별 기능별 자율적 의사결정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자율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지 못할 경우 물류 네트워크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중앙의 의사결정을 기다리다 중요한 초기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자율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유연한 조직의 구축은 인재 양성과 기업 문화의 전반적 재검토를 필요로 한다. 팀 하포드의 "어댑트"에서는 불확실성의 시기에 중앙집중형 통제 구조는 현장과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계획에 기반한 대응 보다는 원칙에 기반한 임기응변식 대응, 하향식 보다는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 탈집중화 및 분산화된 자율적 의사결정 구조의 정착이 필수라고 주장하였다 [3]. 전체 네트워크 최적화 관점에서 운영되는 물류기업 역시 물류 리스크 관리를 위하여 상향식과 하향식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의사소통 체계 및 IT 역량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물류 네트워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지만, 동일본대지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네트워크에 대한 제한된 정보로 인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의 문제가 즉각 관리자에게 보고되는 체계 구축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위기에 강한 정보기술 (IT) 역량의 구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물류 기업의 전문 운영 역량 뿐만 아니라 IT 역량의 강화가 중요한 것이다. 물류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물류 프로세스 운영과 관련한 역량을 중요시하고 IT 시스템에 대한 운영은 전문 IT기업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웃소싱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자체적인 IT 역량의 고도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일본대지진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결국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는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는 문제해결역량이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매뉴얼 및 계획에 따른 기계적 대응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자율적 능동적 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앞으로도 기업의 공급망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공급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글로벌화와 함께 더욱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미래 물류기업의 핵심 역량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동적 프로세스를 원칙에 기반한 자율적 능동적 프로세스로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수동적 계획 기반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이에 안주하다가는 다가올 변화의 시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단순히 물류리스크 관리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기업 문화와 조직, 시스템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Holguin-Veras et al. (2012), The Tohoku Disasters: Preliminary Findings concerning the Post Disaster Humanitarian Logistics Response, Working Paper
[2] http://www.3plstudy.com
[3] 팀 하포드 (2011), "어댑트",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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